오늘의 감동을 잊지않기 위해서 적어두는 글
1949년생의 학생과 1985년생의 교수가 만나서, 세월을 뛰어넘어서 가르침과 배움을 나눈 잊지못할 경험
지역대학이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지난주에, 갑자기 "교수님, 만학도 ***입니다. 그동안 확진이 되어서 공부를 못했어요. 평소 교수님 수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번 찾아뵙고 의논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문자가 왔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한번도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전자출결 게시판과 zoom 화면을 통해서 막연히 노년기 여성으로 알고 있던 분이었다.
만학도, 라는 고전적인 표현을 쓰길래 다시한번 확인을 해보니 학생증 사진이 무려 곱게 한복 차려 입으신 사진(아마도 결혼식 때 혼주 세팅으로 찍으신 듯한!)이었다ㅎㅎ
연구실 알려드리고 다과 준비해두고 기다리고 있노라니, 학교 건물을 두번이나 잘못 찾아가시고ㅠ 고생 끝에 찾아오신 이 학생분이 놀라운 얘기를 들려주셨다.
올해로 73세 되시는 이 학생 어르신은, 중학교 졸업 후 집안일을 안팎을 돕다가 결혼 후 자녀 셋을 낳고 알뜰살뜰 집안 살림을 돌보며 칠순까지 쉼 없이 열심히 살아오셨다.
하지만 마음속에 독립유공자셨던 외할아버지처럼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삶이 늘 안타까운 마음이 크셨다고.
그래서 첫 손자가 대학을 가던 그 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도전하셨고 손자의 대학 입학과 함께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셨다!
같이 학원 다니며 공부한 친구분들 중에 제일 먼저 고등학교 졸업하신 이 학생어르신에게 '내친김에 대학을, 무조건 4년제 대학을 가라'며 등 떠밀어 준 것은 두 딸들이었다.
큰딸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등록금 지원이 안나오더라도, 엄마 등록금은 내가 내줄테니 걱정말고 대학 가라며 적극 지원해주었고,
둘째딸은 80이 넘은 아버지, 90이 넘은 할머니(우리 학생어르신이 모시고 사시는 시어머니ㅠ) 설득에 나섰다.
그렇게 평생을 인스턴트 음식 조미료 한번 사다 쓴 적 없는 이 '프로 살림꾼' 학생어르신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매일 삼시세끼를 남편에게, 시어머니에게 '손수 해다 바치는' 매일이고 남편 퇴직 이후에 집을 짓고 귀향한 단양 시골의 전원주택 관리도 도맡아 하시며
zoom수업 중간중간에 '눈치도 없이' 문 열고 들어와서 참견하는 남편에 시어머니가 있지만
그녀는 수업도 빠지지 않고, 어떻게든 학기를 이어가고 계시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단양에 처음 왔을 때, 서울에서 생활하며 만났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곳 노인들의 열악한 삶의 질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먹는 것, 씻는 것, 치아 관리하는 법, 세금 내고 용돈 관리하는 것까지...두손 두발 다 걷어붙이고 나서서 가르쳐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란다.
그래서 지금 이 수업, <평생교육 프로그램 개발론> 수업은 들을때마다 졸업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바로 그 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가슴이 뛴다고.
"제가 근데 배운게 없잖아요. 이제 대학을 나오고 자격이 되면 군청에 가서 당당하게 나한테 교실을 열어달라고, 기회를 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간고사 점수도 낮고, 퀴즈도 매번 잘 못보시는거 같아서 조심스레 "공부 많이 힘드시죠? 온라인으로 공부하니 더 어려우시고.."라고 했더니
"엄청 힘들어요~ 죽겠어요 ~" 라고 하시면서도
"저 어서 배워서 봉사하면서 살고 싶어요. 졸업하고 딱 10년동안 열심히 노인들 가르치는 봉사하려고요." 라며 포부를 밝히셨다.
남들은 여생을 보내며 이미 열린 열매를 맛보는 때를 보내고 있을 때, 분주히 새로이 씨를 뿌리고 서툴지만 조금씩 싹을 틔우는 이런 분도 있다.
교육학에 안드라고지(andragogy) 개념이 있다. 성인기 교육은 사회교육, 직업교육과는 달리, 성인기에 새롭게 삶의 의미를 재구성해나가며 자신의 삶에 필요한 교육적 필요를 스스로 찾고 채워나간다는 것
요즘 '대학교육,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에 대해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있었는데, 계시처럼 소중한 이 만남이 주어졌다.
+덧. 벌써 3학년인데 그동안 들었던 수업 중에 다른 수업은 '그날 들어도 돌아서면 까먹는데' 내 수업만큼은 기억도 잘 나고 너무 재미있어서 네번도 돌려보신다고ㅋㅋㅋ
"교수님 목소리가 맑고 깨끗해서 졸릴 틈이 없어요!"라고 하셔서 빵 터졌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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