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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해킹, 생명윤리, 그리고 젠더 - Netflix 다큐 <부자연의 선택>을 보고

stella.h.shin 2020. 11. 11. 15:29

(가칭)페미 책모임에서 11월에는 바이오해킹을 '제대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낙태죄' 폐지라든가, 모성과 관련해서, 출산 전후로 여성이 겪는 경력단절과 관련해서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으로 인해서 어쩔수 없는 차이가 있지 않은가 등 

직간접적으로 생물학, 자연 결정론과 관련한 주제로 이어지는 경험을 집단적으로 했다.

 

모임 멤버 중에 S님은 생명공학 쪽에 지식이 있는 분이었고,

우리와는 다른 앵글에서,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의/과학기술계의 변화의 흐름을 소개해주시곤 했다.

 

그래서 모임의 주인장 M님은 아래와 같이 제안을!

넷플릭스에서 제공 중인 '부자연의 선택'을 보고 바이오해킹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부자연의 선택'은 다큐멘터리로 4편짜리 시리즈입니다. 각각 한 시간 정도로 1, 2, 3편을 보고 오시면 4편을 함께 본 뒤 대화를 나누어 볼 계획!!

 

그래서 보게 되었다, 넷플릭스 다큐 <부자연의 선택>.

아래는 1-4편까지 스킵도 해가면서 봤던 다큐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들 

 

1편: 생명을 편집하다

결국 생명공학을 가지고, 바이오해킹 기술(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게 된 것들에 대한 규제와 허용에 대한 결정이 중요할 것이다.

 

1편: 생명을 편집하다

과학자들이 지식을 소유하고, 점유하고,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오 해커 1인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내가 Open Access 지식공유 운동을 하면서 특히 문제의식을 많이 느낀 분야가

자연과학, 기술공학 분야였다.

엄청나게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만큼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아니면

국가 단위의 엄청난 지원사업이 들어가는데-

이 경우는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진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산출물이 논문이든 특허든, 그리고 물화되어 존재하는 물질이나 기계든

그걸 만들거나 투자한 학교, 연구자, 기업에게만 특허권 심지어 열람권(일반인은 보지도 못하게 하는거다)이 제한된다.

 

 

1부: 생명을 편집하다

인간이라는 종이 쥐의 수명을 늘린다, 한 종의 생명의 사이클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가?

궁극적으로 인간이 쥐의 수명을 늘리는 것은

쥐와 상당히 비슷한-같은 포유류인-인간 자신의 생명을 늘리겠다는 의도를 가진다.

그렇다면 하나의 종의 수명을 줄이기 위해서 다른 종의 수명을 왜곡시키는 것을 '수단'으로 취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윤리가 '모든 생명'에 적용된다면

다른 생명을 다룰 윤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선택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본다.

 

1부: 생명을 편집하다

안경을 끼는 것은 (상대적으로) 공평하지만, 눈에 망원경을 다는 것은 '강화'(enhancement) 라서 위험하다는 게 위 전문가의 주장이다.

신체에 부가적으로 도구를 장착하는 것은 괜찮다. 그건 그 사람이라는 인간 자체를 변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에.

하지만 신체 자체를 강화하는 것, 더 좋아버리게(better) 하는 것은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건 반칙이잖아"라고 선을 긋는듯하다)

 

 

1부: 생명을 편집하다

이 다큐의 최대 치트키라고 생각하고, 정말 영리하다고 생각한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잭슨이라는 소년이 수미쌍관으로 등장한다.

유전자조작을 일삼는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좇는 매드사이언티스트 같은 사람들 (그리고 백인남성들)

요즘 뉴스에 빨간모자 쓰고 자주 등장하는 레드넥 같은(...) 계층과 사회집단에 속하는

과학체계 밖에서 유전자 조작을 시도하는 사람들(역시나 백인 남성들)로 나타난다.

이사람들만 봐서는 유전자 조작이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투영하는 '괴물같은 것'으로 거부감이 드는데

갑자기 잭슨 이야기에 가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너무 예쁜 어린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유전적 결함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게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아니 이거야말로 반칙아닌가! 애는 건드리지 말라고ㅠ)

갑자기 생명공학, 바이오해킹이 소외계층을 위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은근히 알려준다.

여기서 혼란이 찾아온다. 

내가 정상인(사회적 기준에서 평균치에 가까워서)이어서

이러한 전복적/ 급진적 시도에 대해서 안이하게 "나중에", "시기상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1부: 생명을 편집하다

흥미로웠던 지점은, 일부러 그렇게 배치하거나 섭외한 걸지도 모르는데

대체로 기존 지식 생산 체계에서 상층부에 속하는 이들- 대학과 행정기관 소속의 사람들은 

생명공학의 바이오해킹에 대해서 끊임없이 위험성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자원이 없거나 젊은 세대에 속한 이들이

바이오해킹, 그리고 체제 밖의 변칙적인 시도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마치 바이오해킹이 지금까지 인류의 가능성을 가로막아 온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는 민주적 시도(실제로 크리스퍼가 상대적으로 민주적 메커니즘이라는 표현도 나옴)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2부: 시작하는 사람들
2부: 시작하는 사람들

2부는 어찌보면 급진적이다. 

다윈의 말이 모두에 나온다. 제도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불행한 것이라면 그건 우리(아마도 제도를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들이겠지)의 죄라는 말이 나오고, 이건 자연선택설에 의한 것은 어찌보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의 방증 같기도 하다.

- 물론 저 말은 이미 자연에서 선택되어서(수정되고 배태되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세상에 나온 이상 모든 사람은 제도에 의해 차별받거나 불행해서는 안된다는 천부인권 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전신마비에 처한 아들이 나오고, 그 아들이 조금이라도 존엄성을 지켰으면 하는 부모가 나온다.

미국에서 파산 원인 1위가 의료비라는 것도...(아 역사와 함께 사라진 오바마 케어...)

 

곧 이어서 1부에 나왔던 바이오해커들이 나오고

이들이 모여서 - 아무리봐도 생명공학 덕후들 모임 같은- 바이오해커 컨퍼런스 현장이 나온다.

"Bio -hacking is not crime"이라는 글씨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신이 나서 각자 하던 실험을 공유한다. 

 

2부: 시작하는 사람들

 

사실이 다큐가 궁극적으로 미국의 극심한 건강불평등, 지식의 불평등에 대해서 다루려는구나- 라고 간파하게 된 것은 2부의 후반부에 가면서 부터다.

모두가 기술을 갖고, 모두 할 수 있다면...그리고 인종, 계급, 성별에 따라서 '사람 가려가면서' 이미, 어쩌면 충분히 확보된 기술을 제대로 배분하려고 하지 않는 소수 기득권층에 의해서 좌우되는 지금의 이 구조를 바꿀수 있지 않냐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행동과 시선, 말을 전하는 제작진.

 

2부: 시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아주 제한적인 사유는 개인의 복지, 건강, 보호일 경우일 뿐이라는 말로

쐐기를 박는다.

개인의 복지, 건강, 수명에 대한 욕구를 추구하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오히려 자신들의 개인의 건강을 추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데

국가라는 권력체가 이것을 제한하는 것이 온당한가라고 되묻는다.